[KR] 개발용 임시 css 입니다. ?>
본 컨텐츠는 의학채널 비온뒤의 컨텐츠를 편집한 것으로,
특정 제품의 효능·효과에 대한 정보가 아닙니다.
[닥터WHO] 류마티스 전문의는 왜 셜록홈즈일까? - 엄완식 원장 인터뷰
7분


“이공계 장려하던 국가적 분위기와 경제적 이유가 의대 진학을 마음먹게 해”
엄완식 원장의 학창시절엔 과외가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로 교육열이 대단했다. 엄 원장의 고향인 경주의 학생들 중 공부 좀 하고, 집안 살림이 괜찮은 학생들은 대구로 유학 아닌 유학을 가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는 경주에선 괜찮은 성적이었지만 ‘도시 아이들’과 비교했을 땐 우물안 개구리였노라고 회상했다.
당시엔 국가적으로 이공계를 장려했다. 기술분야로의 진학이 나라 발전에도 개인적 발전에도 유리하다는 선전을 많이 했던 것이다. 귀가 얇은(?) 엄 원장은 왠지 맞는 말인 것 같아 이과로 진학했다. 그땐 지금과는 달리 물리학과와 전자공학과가 가장 경쟁이 치열했고, 그만큼 성적이 좋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의대는 그 다음이었다. 물리학과는 영재나 수재 소리 듣는 아이들이나 간다는 지레 짐작 때문에 포기했고, 전자공학과는 성적이 부족했다. 그 외에 다른 선택지도 많았을텐데 굳이 ‘의대’였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묻자 그는 담담히 경제적 이유를 꼽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형제를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집이 다른 집보다 못 사는 것 같고, 앞으로 밥도 벌어먹고 살아야할 것 같은데. 철이 들면서 고민이 시작 된 거죠” 어린 나이에도 미래가 걱정스러웠다. 결국 그는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으면서도, 졸업하고 나서도 취업이 힘들지 않을 것 같은 의대를 선택했다.
“내과 의사 뽑는데 남녀차별이 왠말이냐” 홍창기 교수와의 만남
85학번으로 의대에 입학한 엄완식 원장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대학생활을 보냈다. 전두환 정권 시절 대학가는 데모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졸업시즌이 되어 인턴생활 할 병원을 결정 내릴 때가 됐다. 출신학교 병원에 들어가는 것이 1순위이던 시절이었으니, 원래대로라면 경북대 병원을 가야했지만 대구를 벗어나고 싶었던 엄 원장 눈에 들어온 것은 89년 개원한 아산병원이었다. 아산병원은 여러모로 다른 병원들과는 달랐다. 내과는 특히 더 그랬다. 엄 원장은 폐쇄적이던 다른 병원의 분위기와 달리 개방적이고 파격적인 아산병원 내과 분위기를 조성한 1등 공신으로 홍창기 교수를 꼽았다.
여성을 많이 뽑았다는 것만 봐도 남달랐다. 당시엔 여자의사들이 설 자리가 한정적이었다. 산부인과나 임상병리 쪽 위주였고, 내과에서도 여성들을 뽑긴 뽑았으나 수가 적었다. 선발인원이 20명 정도라면 한두 명만 여자를 받았던 것이다. 남자들은 비교적 쉽게 출신대학 병원에 남아 안정적인 자리를 보장 받았으나 여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 신시내티 의대에서 15년간 교수생활을 했던 홍창기 교수에겐 의아한 일이었다. “내과 4기가 15명인가 그랬는데 그 중 여자가 절반이었어요. 전국에 그런 병원은 없었죠” 엄완식 원장은 말했다. 요즘 상식대로라면 지극히 일반적인 일이겠지만 당시엔 파격적인 단행이었다. 훗날엔 정말 ‘실력대로’ 뽑았다면 남자는 아예 들어갈 수 없었을거란 말이 돌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도 파격의 연속이었다. 당시 병원은 3년차가 2년차를 가르치고, 2년차가 1년차를 가르치고 하나씩 건너서 가르치는 군대식 시스템이었다. “인턴은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이름만 인턴이지 환자를 본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하지만 홍창기 교수는 달랐다. 선배들의 심부름꾼에 불과했던 인턴에게 일다운 일을 시킨 것이다. 내과 과장이었던 홍창기 교수는 인턴과 1년차 레지던트들을 토요일마다 불러 자기가 맡고 있는 환자에 대해 발표하도록 시켰다. 함께 환자들을 방문해 자신이 진료보는 시범을 보이고, 학생들과 토의를 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닌, 인턴일 뿐인데 내 말을 들어주고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았죠”
엄 원장은 기존에 없던 깨끗한 시설이나, 전세계에 퍼져있던 훌륭한 한국의학자들을 모셔오는 노력 등이 초창기 아산병원 발돋움의 원천이면서도, 내과에서만큼은 홍창기 교수가 도입한 선진적 시스템이 초기에 확실히 자리를 잡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봤다. 그렇게 선진적인 분위기에서 엄 원장은 이곳에서 내과를 지망하면 나중에 후회할 일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류마티스 전문병원 창립자” 김성윤 교수와의 만남
군 다녀와선 IMF가 터졌다. 사회복귀 후엔 아산병원에서 전임의를 할 계획이었던 엄원장에겐 날벼락같은 일이었다. 나라가 망한다 만다 하고, 아산병원에선 인력을 뽑지 않았다. 공석이 없으니 기다리는 것 밖에 없는 상황.
그 때, 방송을 통해 뜨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한양대 김성윤 교수다. 당시만 해도 류마티스는 알려진 질환이 아니었다. 김성윤 교수가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까지만 해도 류마티스는 정형외과의 영역이었다. 자가면역질환이 아니라, 뼈와 관절문제로만 이해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소염진통제로 근근히 치료 아닌 치료를 했다. 김성윤 교수는 류마티스 질환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직접 방송국을 찾아 출연을 의뢰했다. 방송은 파급력이 컸다. 93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진료환자 대기수가 전국랭킹 1위로, 무려 대기환자가 6천 7백명. 3개월을 대기해야 만나볼 수 있는 의사가 됐다. 하지만 의료사회에서 김 교수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방송출연 하는 의사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데다가 류마티스 치료제로 ‘메토트렉세이트’를 처방했단 이유 때문이었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약이지만, 과거엔 항암제로만 분류됐기 때문에 수모를 당한 것이다. 엄 원장은 김 교수를 알게 되고, 한양대에서 전임의 과정을 밟기로 마음먹었다. 본격적인 류마티스 전문의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안정적인 교수생활, 뛰쳐나가게 된 계기는?”
순천향대 부천병원 류마티스 교수를 거쳐, 한양대에서 교수생활을 하다 엄원장은 美 에머리대학으로 연수를 가게 된다.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950원 가량하던 환율이 1500원, 1600원까지 뛰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중간에 귀국하는 불상사가 생길 뻔 했지만, 다행히도 2년 간의 연수를 끝마칠 수 있었다.
교수들이 연수를 가는 것은 최신의 의료기술을 습득한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지만, 외국에서 논문을 내고 들어오면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를 받을 수 있는 ‘스펙’이 되는 것도 큰 이유다. 복지부 연구비는 연구 실적이 있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수는 오히려 한국의 상황이 얼마나 답답한지 깨닫게 했다. 내용은 아무것도 없는데 결과는 성공, 실패는 없는 한국의 연구는 실제로는 그 어떤 성공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교수들은 어쩔 수 없이 일단은 답이 나오는 연구를 해서 실적을 쌓고, 정말로 하고 싶은 연구는 기회를 조금씩 모아 든다. 그러나 미국은 사정이 달랐다. 그곳에선 실패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연구를 했다. 실패하면 교훈을 얻어 다른 것을 연구하고, 평생 그렇게 연구를 한다. 우리는 몇 번 실패하면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없다. 그런 연구를 하는 사람은 바보고, 그런 연구는 하면 안 된다. 엄 원장은 답답하고, 회의감이 들었다.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직은 편한 앞날과 경제적 안정을 보장했지만, 임상논문을 때마다 내면서 하는 자리보전은 정말로 자신이 원하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산병원을 선택할 때 그랬고, 한양대 류마티스 내과를 선택할 때 그랬듯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어차피 다이내믹하게 살았는데, 말년 15년을 안정적으로 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시 한 번 뛰쳐나갈 마음을 먹었다. 엄 원장은 성동구에 '한양류마 엄완식 내과'라는 작은 병원을 개원했다.
“의대 교수 VS 개원의 생활, 가장 큰 차이는?”
교수 때는 수업도 하니 진료를 보는 횟수가 많진 않았다. 하루를 두타임으로 나눠, 일주일에 총 다섯타임 진료를 봤다. 한 타임에 실제로 보는 환자수는 60여명 정도. 그러니까 하루종일 진료를 본다고 가정하면 100명~120여명을 보는 셈이다. 그러나 개원하고 초반엔 감기환자를 포함해 30명 정도 뿐이었다. 일하는 시간은 대폭 늘어났는데 정작 진료하는 환자수는 절반 이상 감소한 셈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환자들이 늘어났다. 강화도에서 시외버스를 모는 버스기사 환자분은 관절이 아파보이는 승객이 타면 한양 류마 엄완식내과 명함을 주고, 구리 시장에서 기름집을 하는 환자분은 시장 상인들에게 홍보를 해준다. 인심 넘치는 ‘바이럴 마케팅’이다. 엄 원장은 개원의 생활을 하면서야 비로소 병원이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프랜차이즈 직영점과 단골이 많은 작은 가게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대학병원 이름이 주는 신뢰도가 사라지자, 엄 원장은 “나는 당신을 상대로 해서 사기치지 않습니다”라는 신뢰를 주기 위해 노력할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는다.
예를 들어 루푸스 환자가 오면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검사비용만 20만원 가까이 나온다.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자연히 ‘피검사 하고, 가슴 사진 하나 찍는데 뭐가 이렇게 비싸지?’ 의문이 들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엄완식 원장은 진료기록지를 작성하고, 종합소견까지 덧붙여 환자에게 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본인의 병명을 헷갈리고, 치료를 받은지 수년이 지나서도 퇴행성 관절염을 류마티스로 착각하는 등 문제가 있어서 도입했지만 순기능이 커서 모든 환자들에게 적용했다. 집에 가서 가족들과 상태를 공유할 수도 있고, 본인도 질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오히려 왜 다른 병원에선 이런 일을 안 할까? 의아함이 들었죠. 생각하다보니 진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게 됐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이라고 써놨는데 다른 병원에서 그렇지 않음이 드러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죠.” 하지만 다년간의 경험으로 진단정확도에 자부심이 있는 엄원장으로서는 문제되는 지점이 아니었다.
“류마티스 내과 전문의는 [셜록 홈즈]다”
류마티스 질환은 허공에 붕 뜬 학문 같았다. 내과에선 목요일마다 환자 사례를 발표하고, 어떤 질환인지 토의하는 행사를 했다. 언급된 문제들 중 이상하고 안 풀리는 건 전부 류마티스가 답이었다. 류마티스는 환자에 따라 증상이 천차만별이다. 근육이 허약해지는 경우도 있고, 피부 반점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류마티스는 인기있는 과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소화기내과나 심장내과 등을 좋아했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게 별로 없는 류마티스의 모호한 지점이 엄 원장에겐 매혹적이었다. 그는 여러 증거들을 조합해 조금씩 실마리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류마티스 전문의를 셜록홈즈에 비유했다. 류마티스 전문가 엄완식 원장과 류마티스에 관한 일문일답을 나눴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관절에만 생기는 병이지요?
-아닙니다. 환자분들은 관절이 아파서 오시지만, 관절 뿐 아니라 다양한 장기에 생기는 만성 전신질환입니다. 통풍, 루푸스, 쇼그렌 증후군 등도 류마티스에 포함되죠. 재발 없이 완치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환자들이 장기적으로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게 됩니다. 심지어 오래되면 3~5년 정도 수명이 단축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미리 예측할 수 있나요?
-예 맞습니다. 100%예측은 불가능하지만 류마티스 인자나 CCP 항체와 같은 자가항체가 미리부터 증가하므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합니다. 미국에선 군인들의 피를 매년 뽑아서 보관하는데요. 관절염이 생긴 군인들의 과거 혈액을 재조사해 연구한 결과, 류마티스가 발병하기 약 8년 전부터 슬슬 차이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하지만 지레 겁먹고 증상이 없는데도 피검사를 주기적으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유전적 이유로 생기나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모두 관련있습니다. 유전이나 여성 호르몬 등은 타고난 원인이라 어쩔 수 없으나 환경 요인들은 조절가능하므로, 류마티스가 걱정된다면 신경 쓰시면 좋겠습니다. 흡연, 비만, 장내세균, 치주질환, 육류소비, 감미료가 함유된 음료 섭취 등 위험요인은 굉장히 다양하죠? 비타민C 복용, 경구 피임약 복용, 모유수유, 가끔 마시는 포도주 한 잔 등 류마티스에 도움이 되고. 하나하나 다 따지기에는 가지수가 너무 많으니 일반적으로 건강에 도움된다고 권장되는 생활을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면역력을 높이면 이겨낼 수 있는거죠?
-같은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선생님 00 먹으면 면역력 높아지나요?”하고 특정 식품이 좋은지를 묻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면역은 증가와 감소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수평계’에 비유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수평계는 물방울이 정중앙에 있을 때 수평이 이뤄졌다는 표시를 하죠. 면역도 똑같습니다. 항상 적정상태에 있어야 하는 것이지 사방으로 벗어나면 안 되죠. 어느 쪽으로 벗어나도 비정상이라는 것입니다.
“규모가 아니라 진료의 질로 아시아 제일가는 병원 만들고파”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우리나라 최고 병원 중 하나인 아산병원, 류마티스 분야의 선구적 입지를 다지고 있는 한양대 류마티스 병원의 초창기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경북대 의대 - 아산병원 - 순천향대 - 한양대 병원.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며 발전해온 엄 원장의 포부가 궁금했다. 앞으로는 또 어떤 선택을 내릴까?
그는 “병원 규모를 더 키우고 싶은 욕심은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병원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정한 규모의 병원은 지금도 충분하다. 병원을 키우기 위해 하지 않아도 될 수고를 하면서 에너지를 나누고 싶지 않다. 전문분야를 공부하는데도 부족한 시간이다. 엄 원장이 앞으로 만들고 싶은 건 대학병원 안 가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진료의 질이 높은 병원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친절하고, 깨끗하고, 잘 치료하는 병원. 일본은 빼야할지 모르겠지만. (웃음)
급속도로 고령화 되는 우리나라. 류마티스 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그만큼 더 늘어날 전망이다. 셜록홈즈가 그러하듯,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의학채널 비온뒤에 있습니다.
(주)에스더포뮬러는 의학채널 비온뒤의
컨텐츠 제작을 후원합니다.
본 컨텐츠는 의학채널 비온뒤의 컨텐츠를 편집한 것으로,
특정 제품의 효능·효과에 대한 정보가 아닙니다.
글 작성시 설정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어요